항목 ID | GC078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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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鳴聲山城 |
영어공식명칭 | Myeongseong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울음산성,울음성,명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산26-2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경신 |
조성|건립 시기/일시 | 통일 신라 말 - 명성산성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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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2년 - 명성산성 철원군지 증보편찬위원회 현황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3월 28일~1994년 4월 16일 - 명성산성 국립문화재연구소 지표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5월~1995년 4월 - 명성산성 강원대학교박물관 지표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3월~1996년 11월 - 명성산성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지표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6월 14일~2005년 12월 12일 - 명성산성 강원문화재연구소 광역 지표조사 |
현 소재지 | 명성산성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산26-23[명성산] |
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1.5~2.0㎞[둘레]|3m[높이]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산성.
[개설]
명성산성(鳴聲山城)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명성산[922.6m]에 있는 포곡식(包谷式) 석성산성으로 명성(鳴城) 또는 울음성, 울음산성으로도 불인다. 대체로 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사용된 성으로 알려져 있다.
[건립 경위]
명성산성에 대한 정확한 건립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고 보개산성, 성동리산성을 거쳐 마지막 보루로 명성산성을 택하여 저항한 것으로 전한다. 당시 해산된 궁예의 군사들이 통곡하는 소리로 인하여 사람들이 울음산성이라 하였다고 한다. 성 내부 및 주변에서 주로 기와, 도기, 토기류가 채집된다. 주로 통일 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다. 따라서 성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 신라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명성산성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산26-23[명성산]에 있다. 국도 제43호를 따라 신철원에서 운천 방향으로 이동하여 운천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약 100m 이동하고, 다시 산정호수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매표소를 지나 산안고개 정상부까지 약 4.5㎞ 이동하면 명성산성이 나온다.
[형태]
명성산성은 1992년 철원군지 증보편찬위원회에서 현황 조사를 실시하였고, 1994년 3월 28일부터 1994년 4월 16일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며 성벽 상태를 조사하였다. 1994년 5월부터 1995년 4월까지 강원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며 연원 등 정밀 조사를 실시하였다. 1996년 3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기와편을 채집하였다. 2004년 6월 14일부터 2005년 12월 12일까지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광역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지리 정보를 확인하였다.
명성산성은 명성산 서북쪽에 있는 궁예봉[823m, 또는 시루봉]의 8부 능선을 두른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한 것이 관찰된다. 주로 사람이 오르기 쉬운 계곡부와 능선의 하단부는 견고한 석축을 하였으며, 절벽으로 형성된 곳은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성벽은 방형과 장방형 돌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다듬돌과 자연돌을 적절히 분배하여 쌓았다. 동벽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구조이고, 서벽은 협축(夾築) 방식으로 쌓은 석축 구간과 자연 지형을 적절히 혼용하여 만들었다. 남벽은 가파른 천연절벽 구간으로 석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벽은 다듬돌과 자연석을 섞어 견고하게 쌓았다. 성 내부 시설로는 망대, 문지[북문지, 남문지], 건물지 등이 잔존한다. 명성산성은 둘레가 1.5~2.0㎞이며, 성벽 높이는 약 3m이다. 서벽 성돌 크기는 50㎝×30㎝, 60㎝×35㎝, 35㎝×20㎝이며, 남벽 성돌 크기는 30㎝×45㎝, 25㎝×20㎝, 45㎝×35㎝, 북벽 성돌 크기는 50㎝×45㎝, 60㎝×40㎝, 25㎝×55㎝이다.
[현황]
명성산성의 현재 성벽은 등산로 및 소로 등에 의해 잘린 부분이 많다. 그리고 성벽의 성돌을 이용하여 돌탑을 쌓은 곳도 발견된다. 북벽은 약 10단 정도의 석축이 확인되지만 기타 구간은 대부분 2~3단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성의 내부와 외부에는 기와, 도기 등 다수의 유물들이 노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명성산성은 궁예가 고려의 태조와 대치 중일 때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고려 개국 과정을 고고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고려 초기 중부 지역 관방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다만 성이 방치되면서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 조속한 시일 내에 공식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성의 구조, 시기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