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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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華寺址 |
영어공식명칭 | Yonghwasaji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2리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창석 |
소재지 | 용화사지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2리[용화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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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절터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절터.
[개설]
용화사지(龍華寺址)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2리에 있는 절터이다.
[변천]
용화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기록이 전혀 없으나 수습된 기와의 형식과 문양으로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이라고 추정된다. 명문 기와 중에서 ‘강희□년(康熙□年)’이라고 판독되는 것이 있어서 용화사는 18세기 초까지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위치]
용화사지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2리[용화동]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용화사지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제 강점기 이래 부분적인 지표 조사와 유물 수습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석탑과 불상이 유실되었고, 석탑의 일부 부재와 주춧돌 등이 제대로 수습되어 조사되지 못하였다.
[현황]
일제 강점기 간략한 보고에 따르면, 밭으로 변한 절터 곳곳에 주춧돌과 기와가 흩어져 있고, 2m 남짓한 4각 5층 석탑이 1기 있었다고 한다. 석탑은 서울로 유출되었다고 전한다. 1977년 간행된 『문화유적총람』에 의하면, 높이 50㎝ 정도의 목이 떨어져 나간 불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 많은 기와 조각이 수습되었고 일부 석탑 부재와 장대석도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용화사는 철원 지역의 고대 사찰로 창건과 폐사 시점을 확인할 수 없고 석탑과 불상도 유실되었다. 하지만 용화사지에서 명문과 다양한 문양의 기와가 수습되어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까지 존속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화사는 통일신라 시대 철성군의 사찰이었다가 태봉 시기에 활용되고 다시 고려와 조선까지 유지되었으나 18세기 중엽 이후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