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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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時萬墓碑 |
영어공식명칭 | Leesiman Tombsto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원미경 |
건립 시기/일시 | 1715년 - 이시만 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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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01년 - 이시만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72년 - 이시만 사망 |
현 소재지 | 이시만 묘비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산 |
성격 | 비 |
양식 | 비좌개석(碑座蓋石)형 |
재질 | 화강암[개석]|대리석[비신]|화강암[대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79㎝[전체 높이]|165㎝[비석 높이]|64㎝[폭]|49㎝[두께] |
소유자 | 이시만 후손 |
관리자 | 이시만 후손 |
[정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철원부사를 지낸 이시만의 묘비.
[개설]
이시만(李時萬)[1601~167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석여(錫汝)이며 증(贈)이조판서 양휴(揚休)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30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를 역임하였고, 병조좌랑(兵曹佐郎)·예조좌랑(禮曹佐郎)·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 등 3사의 요직을 지냈다. 1647년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으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병조참지(兵曹參知)·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1650년(효종 1)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김자점(金自點) 일당이라 하여 파직되었다. 이후 철원부사(鐵原府使)를 지냈다. 이시만 묘비(李時萬墓碑)는 1715년(숙종 41) 건립되었다.
[위치]
이시만 묘비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서 도피안사(到彼岸寺)를 지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관음동으로 가는 지방도 제464호에서 관음동고개를 넘어 왼쪽 군부대로 들어가면 행정반 뒤쪽 야산에 있다.
[형태]
이시만 묘비는 비의 머리 부분에 개석을 씌운 비좌개석(碑座蓋石) 형태로 개석은 팔작지붕이며 대석은 문양이 없이 단조롭다. 전체 높이는 279㎝이고, 비석 높이는 165㎝, 폭은 64㎝, 두께는 49㎝이다. 개석과 대석은 화강암이고 비신은 대리석이다.
[금석문]
이시만 묘비에는 ‘증이조참판행전남도관찰사 이공휘시만묘(朝鮮國 贈吏曹參判行全南道觀察使李公諱時萬墓)[정부인 안동권씨부좌(貞夫人安東權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이언강(李彦綱) 찬(撰)하고 소식(蘇軾)·안진경(顏眞卿)의 글씨를 모아 썼다.
[현황]
이시만 묘비는 비의 마멸 상태가 양호하고 묘소는 정부인 안동권씨와 쌍분이다. 묘소는 잘 정리되어 있고 석물과 비석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시만은 조선 후기에 여러 요직을 지내고 말년에 철원부사를 지낸 인물로 이시만의 묘와 묘비가 철원군에서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