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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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謹中墓碑 |
영어공식명칭 | Hwanggeunjung Tombsto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원미경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85년 05월 - 황근중 묘비 복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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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60년 - 황근중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33년 - 황근중 사망 |
현 소재지 | 황근중 묘비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
성격 | 비 |
양식 | 비좌원수(碑座圓首)형[원비]|비좌개석(碑座蓋石)형[신비] |
재질 | 화강암[원비]|화강암[신비 개석]|오석(烏石)[신비 비신]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58㎝[원비 높이]|72㎝[원비 폭]|19㎝[원비 두께]|150㎝[신비 높이]45㎝[신비 폭] |
소유자 | 창원황씨 종중 |
관리자 | 창원황씨 종중 |
[정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황근중 묘비.
[개설]
황근중(黃謹中)[1560~1633]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일지(一之), 호는 월탄(月灘)으로 영춘현감(永春縣監) 황수(黃琇)의 아들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에서 임금을 만나 전함사별좌(典艦司別坐)가 되어 경양도찰방(景陽道察訪), 공조와 호조의 정랑(正郎)이 되었다. 1606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를 지내고, 1609년(광해군 1) 부사직(副司直)에 있다가 금산(錦山)·양근(楊根)의 군수가 되고 안변부사(安邊府使)로 승진하였다. 1615년 강원감사(江原監司)가 되어 지극한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조반정 이후에는 철원 정연리 일대에 내려와 은거하였다. 황근중 묘비(黃謹中墓碑)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 있다.
[위치]
황근중 묘비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토교저수지 옆에 창원황씨 종중 묘역에 있다.
[형태]
황근중 묘비의 원비(原碑)는 비의 머리 부분이 둥근 비좌원수(碑座圓首)형이고, 신비(新碑)는 머리 부분에 개석을 씌운 비좌개석(碑座蓋石)형이다. 원비의 높이는 158㎝이고, 폭은 72㎝이며 두께는 19㎝이다. 신비의 높이는 150㎝이고, 폭은 45㎝이다. 묘소에는 많은 석물들을 배치하였다.
[금석문]
황근중 묘비의 원비에는 ‘가의대부 전라도관찰사겸수군절도사순찰사 황공지묘(嘉義大夫全羅道觀察使兼水軍節度使巡察使黃公之墓)[정부인 광주노씨지묘(貞夫人光州盧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신비에는 ‘가의대부 행강원감사 창원황공휘근중호월탄 자헌대부이조판서 배정부인 광주노씨지묘갑좌(嘉義大夫行江原監司昌原黃公諱謹中號月灘資憲大夫吏曹判書配貞夫人光州盧氏之墓甲坐)’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황근중 묘비의 원비 앞쪽에 총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한탄강변에는 황근중이 지었다고 전하는 정자 창랑정(滄浪亭)이 있다. 황근중은 광해군 때 강원감사를 지냈고 인조반정으로 실직한 후 고향에 내려와 한탄강에서 울분을 삭히면서 지냈다고 전한다. 황근중 묘비는 강원감사 황근중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이고, 황근중 묘소가 있는 창원황씨 묘역을 통해 철원 지역에 창원황씨가 많이 세거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