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019 |
---|---|
한자 | 鐵原私立鳳鳴學校 |
영어공식명칭 | Cheorwon Private Bongmyeong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흥수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철원사립봉명학교는 육영사업과 신문화[개화] 교육, 민족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철원사립봉명학교는 독립운동가로 철원애국단[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단장이었던 소몽 이봉하(李鳳夏)[1887~1962]가 1909년 4월 1일 설립한 2년제 사립학교였다. 이봉하는 고향인 철원군 서변면 용담[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에 사재를 들여 3교실의 가교사를 건립하고 일부 독지가들의 찬조로 남녀공학의 철원사립봉명학교를 설립하였다. 1909년 설립 당시 45명이었던 학생 수는 점차 늘어 1925년에는 150명의 학생이 재학하였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을 받다가 1925년 강제 폐교령에 의하여 폐교되었고 이후 모든 재단은 철원감리교회로 이관되었다.
[교육 활동]
교장은 이봉하와 이재연이었고, 김철회·조종대·강대려·이동환·노재명·이정하·이규자 등 교사 7명의 자원봉사로 운영되었다. 민족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며 항일 의식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철원사립봉명학교는 1919년 3월 10과 3월 11일에 강원도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던 만세운동인 철원읍 3·1운동 당시 교장 이봉하를 비롯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반일 및 독립운동 사상이 철저한 학교로 지목되어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후진양성에 앞장서며 신문화 교육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을 하였고, 1919년 개교한 이래 1925년 폐교될 때까지 1,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한국 단편문학의 완성자로 꼽히는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1904~?]이 철원사립봉명학교 출신으로 1915년에 입학하여 1918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현황]
설립자인 이봉하와 교사였던 김철회, 강대려는 1963년 3월에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과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조종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철원사립봉명학교 터는 지금은 논밭으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