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군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74
한자 金化郡反共愛國殉義者被殺事件
영어공식명칭 Gimhwagun's Anti-Communist Patriot Murder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11월 20일연표보기 - 김화군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사건 발생
발생|시작 장소 김화군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사건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당현동 지도보기
성격 사건

[정의]

6·25전쟁 당시 김화 지역에서 인민군들이 자행한 반공 인사 78명 집단학살 사건.

[개설]

수복지구인 철원 지역은 6·25전쟁 동안 수차례 점령자가 바뀌면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하였다. 낮에는 한국군, 밤에는 인민군 패잔병들이 번갈아가며 마을에 들어와 상대편을 죽였다. 전체적으로 희생자가 몇 명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김화 지역에서 발생한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김화군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사건으로 78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후손들은 그 넋을 위로하고자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를 세웠다.

[역사적 배경]

김화 지역은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공산 치하가 되었고 공산당의 학정에 시달렸다. 자유를 찾아 38선을 넘어 탈출한 김화 주민들은 ‘화랑공작대’를 결성하여 38선 이북 고향인 김화 지역 일원에 반공 활동 거점을 구축하고 반공 투쟁을 감행하였다.

[경과]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20일 새벽 인민군 패잔병과 중공군이 대거 기습하여 미처 탈출하지 못한 치안대원, 공작대원, 반공 인사와 그 가족 78명을 연행하여 무참히 학살하였고 사체들을 유기하였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박림환(朴琳煥)은 혼자 밤에 몰래 사체들을 가매장해 놓았다.

[결과]

6·25전쟁이 끝나고 1955년 4월 20일 수복지구 입주와 동시에 당시 면장 노철수(盧喆洙), 이장 박완식(朴完植), 지방 유지 김용성(金容聲) 등 여러 명 주민들이 김화군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사건의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여 합장하고, 분묘를 마련하여 간소한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1955년 9월 30일 군관민 다수가 참석하여 처음으로 위령제를 거행하였고 반공순의자 78위(位)의 넋을 길이 추모하고 그 유적을 영원히 보존 관리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58년 7월 반공청년단이 목조(木造) 순의비를 세웠고, 1959년 4월 6사단 공병대가 묘 주위 석축과 계단, 묘비 등을 중수(重修)하였다. 그리고 1984년 6월 6일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철원군이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를 건립하였다.

[의의와 평가]

수복지구 철원[김화]은 공산 치하와 6·25전쟁 기간에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희생과 피해가 극심하였던 지역이다. 후손들에 의해 김화군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사건의 실상이 밝혀졌고, 희생자들을 위한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를 세울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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