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48
한자 泰封國鐵原城
영어공식명칭 Taebongdoseong
이칭/별칭 궁예도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홍승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905년연표보기 - 태봉국 철원성 조성
폐지 시기/일시 919년 - 태봉국 철원성의 왕궁와 관부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40년 - 태봉국 철원성 내 고궐리 석등 총독부 지정 보물 제118호 등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경 - 6·25전쟁으로 고궐리 석등 유실
소재지 태봉국 철원성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풍천원지도보기
성격 도성
지정 면적 약 16㎢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에 터가 남아 있는 태봉의 도성.

[개설]

태봉국 철원성(泰封國鐵原城)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에 있는 태봉의 도성이다. 904년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고치고 대대적인 제도 개편을 단행한 궁예가 905년 철원으로 천도하면서 거점으로 삼은 곳이 태봉국 철원성이다. 도성은 평지에 조성되었으며,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의 이중 구조를 갖추었다. 궁예도성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비무장지대에 속하여 본격적인 학술 조사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변천]

국호를 마진으로 변경한 궁예는 905년 송악(松岳)에서 철원으로 천도하면서 운악산(雲岳山)과 명성산(鳴聲山)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도성을 조성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에는 철원의 궁궐이 극도로 사치스러웠다는 평이 남아 있는데, 터를 보면 실제 궁예가 집권할 당시 도성의 규모는 거대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등 조선 시대 발간된 문헌들에서는 태봉국 철원성이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되고, 외성의 둘레는 14,421척[4,226m], 내성의 둘레는 1,905척[572m]이며, 모두 흙으로 축조되었다고 전한다.

태봉국 철원성은 평지에 조성되었고,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에 가까웠다. 이는 한국의 성 대부분이 자연 지형을 이용한 원형이거나 반원형인 것과 대비된다. 내부는 방리제(坊里制) 수준 혹은 방리제보다 완화된 수준의 도시 계획에 따라 구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성 내에는 각종 관부들과 시장이 배치되었고, 구정(毬庭)으로 사용되거나 국가 의례를 치르기 위한 광장이 있었다. 궁성에는 포정전(布政殿)·의봉루(儀鳳樓) 등의 전각과 내고(內庫)가 있었다. 궁예가 미륵신앙을 적극 활용하였던 만큼 도성 내에는 불교 사원이 다수 조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918년 고려의 태조(太祖) 왕건(王建)궁예를 축출하고 태봉국 철원성 내 포정전에서 즉위하였으나, 919년 철원을 떠나 개경(開京)으로 천도하였다. 천도 후 기존의 태봉국 철원성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만 『고려사』에 동주(東州)[철원]의 중심이 태봉국 철원성의 옛 터와 27리[10.5㎞]나 떨어져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록을 토대로 개경 천도 후 태봉국 철원성이 쇠락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까지 귀부(龜趺)와 석등(石燈)이 도성 터에 남아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모두 유실되었다. 특히 고궐리 석등으로 알려진 태봉국 철원성의 석등은 1940년 7월 30일 총독부 보물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태봉국 철원성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북방에서부터 동송읍 월정리 및 중강리까지 걸쳐 있다. 추가령구조곡에 의하여 만들어진 분지 평원 지대에 있다. 외성의 남측 성벽은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에, 북측 성벽은 북방한계선에 접하여 있다. 태봉국 철원성 일대는 풍천원(楓川原)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사』에는 태봉국 철원성의 터가 동주 북쪽 27리[10.5㎞] 풍천의 평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5년 5월부터 8월까지 육군사관학교에서 4차례에 걸쳐 현지 조사를 실시하여 외성의 남벽과 동벽, 내성의 남벽을 확인하였다. 2008년 11월 국립춘천박물관과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에서 공동 조사를 실시하여 내성과 외성의 축조 방식을 검토하였다.

내성은 외성의 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조성 당시 내성을 먼저 세우고 뒤에 외성을 세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성과 내성은 하단부에 지역 암반인 현무암을 깔고 위에 흙을 주재료로 하여 성벽을 쌓았다. 문의 흔적은 현재 남대문 터만 확인되는데, 4대문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황]

태봉국 철원성은 항공 사진과 일제 강점기 지적도를 통하여 윤곽을 복원한 결과 외성의 둘레는 약 12.3~12.5㎞, 내성의 둘레는 약 7.7㎞, 면적은 약 16㎢로 추정된다. 현재 비무장지대에 위치해 있어 본격적인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태봉국 철원성에 대한 건축사·도시사·미술사 분야의 면밀한 학술 조사를 통하여 후삼국 시대 도성의 구조와 기능을 밝힐 수 있다. 또한 남북 교류의 진전으로 제대로 된 발굴 조사가 진행된다면, 태봉국 철원성 내 중앙 관부와 방어 기구 및 생활 공간의 배치 등과 관련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정치사·군제사·사회사 분야에도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