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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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한국 천주교 춘천교구 갈말성당 소속의 공소. 갈말성당 문혜공소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신자 황현성[베드로] 집에서 시작되었다. 공소 건물 건축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57년 6월 철원성당 초대 주임신부인 크로닌[베드로]이 미군의 도움으로 공소 건물을 건립하였다. 1991년 춘천교구 갈말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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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2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서 전개되었던 항일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가 평강 천도교구장 이태윤에게 도착하였고, 철원 천도교 교훈 최병훈에게 200매, 김화 천도교인 채장숙에게 150매가 전달된 것이 강원도 철원 지역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철원군은 경원선 철도가 읍내 한복판을 지나기에 서울의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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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는 갈말읍 관할 행정기관. 갈말읍사무소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행정·민원 업무 및 지방 행정의 기초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79년 5월 1일 갈말면에서 갈말읍으로 승격되면서 갈말읍사무소가 설치되었다. 2018년 3월 30일 총 5,973㎡의 기존 부지에 연면적 1,598㎡,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신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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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경삼(金敬三)[1876~?]은 1876년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의 김경삼·김순복(金順福)·김상보(金相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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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보(金相保)[1881~?]는 1881년 지금의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의 김상보·전사진(全士進)·김학길(金學吉)·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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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순복(金順福)[1897~1958]은 1897년 2월 26일 지금의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의 김순복·김상보(金相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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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에 있는 산. 덕령산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와 동막리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높이는 해발 588.7m이다.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추가령구조곡이 지나가는 곳에 있다. 고려 시대 이후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산이며, 소이산봉수대와 상사봉봉수대와의 중계 역할을 하였던 봉수봉이었다. 덕령산(德嶺山)은 ‘덕재’라는 명칭으로도 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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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 속하는 법정리. 동막리(東幕里)는 철원군 갈말읍의 북쪽에 있으며, 북쪽으로 한탄강을 경계로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이길리 등과 접하고 있다. 동쪽으로 갈말읍 토성리, 남쪽으로 갈말읍 내대리, 서쪽으로 갈말읍 상사리와 접하고 있다 동막리는 과거 독을 만드는 도요지와 막이 있었으므로 대점동, 독말 또는 동막이라고 불리었다.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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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 속하는 법정리. 상사리(上絲里)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서쪽에 있으며 북쪽, 서쪽, 남쪽은 한탄강을 경계로 철원군 동송읍과 접하고 있고 남쪽과 동쪽은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 동막리와 접하고 있다. 누에와 뽕나무 밭이 많아서 옛 이름이 윗실[上絲], 아랫실[下絲里]이었던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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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일대 일제 강점기 나무 땔감 시장 개설 문제. 강원도 철원군의 중심지는 철원도호부가 있었던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일대이다. 반면 지금의 철원군 중심지인 철원군청이 있는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와 상가가 밀집된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는 농토는 물론 집들이 거의 없는 두메산골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외곽 지역에는 산지가 많아 대부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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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남으로도 북으로도 갈 수 없었던 수복 지구 철원 사람들의 운명적인 삶과 애환. 6·25전쟁 당시 철원 사람들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반격하고 인민군들이 쫓겨갈 때 철원 주민들의 80%를 끌고 올라갔다. 하지만 공산주의 열성분자들의 횡포가 싫은 사람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한국군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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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남으로도 북으로도 갈 수 없었던 수복 지구 철원 사람들의 운명적인 삶과 애환. 6·25전쟁 당시 철원 사람들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반격하고 인민군들이 쫓겨갈 때 철원 주민들의 80%를 끌고 올라갔다. 하지만 공산주의 열성분자들의 횡포가 싫은 사람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한국군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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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호병(尹浩炳)[1876~?]은 1876년 지금의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의 김상보(金相保)·전사진(全士進)·김학길(金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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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사진(全士進)[1883~?]은 1883년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의 전사진·김학길(金學吉)·이경삼(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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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에 속한 리(里) 단위 대표들로 구성되어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고 봉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협의체. 이장은 리(里) 단위의 지역 개발과 읍·면장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주민 참여 협의체의 구성원이다. 철원군은 봉사 정신과 책임감이 투철하며 당해 리에 2년 이상 거주한 30세 이상인 자를 이장으로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리를 대표하여 5가지 업무를 수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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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일대에서 조사를 통해 보고된 청동기 시대 유적과, 조사 및 채집을 통해 확인된 유물들의 역사적 의미. 강원도 철원군에서 발견된 매장문화재 신고품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은 편이다. 고고학적 발굴 조사가 많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발견 매장문화재의 존재는 선사 시대 철원군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철원군 발견 매장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