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1309
한자 -鐵原江原道第一-近代文化遺蹟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혜윤

[정의]

일제 강점기 교통의 요충지로 성장한 강원도 철원 지역의 근현대 역사와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적.

[개설]

일제 강점기에서 6·25전쟁을 지난 강원도 철원 지역의 역사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근대 문화유산을 살펴본다.

[일제 강점기 입지 경쟁력을 지닌 철원의 성장]

강원도 철원군은 남과 북이 맞닿은 접경지역이다. 흥미롭게도 남북 분단 이전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강원도 철원군은 역사 속에서도 긴 시간 동안 접경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는 접경지역으로서 백제,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가면서 철원군 지역을 점령하였다. 후삼국 시대에는 수도인 경주에서 가장 변방이었던 철원군에 후고구려[태봉국]가 세워지면서 철원 지역은 두 국가의 경계 지역이었다. 이는 현재 태봉국 터로 남아 있는 유적지가 증명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의 북진로, 병자호란 때에는 청군의 남진로였다.

이처럼 강원도 철원군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이었으나 역사적으로 장기간 고립된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고립되지 않은, 지리적 이점을 지닌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조선총독부는 대륙 진출을 위한 물자수송 기반을 확보하기 위하여 1914년 경원선 철도[서울특별시-강원도 원산시]를 개설하였고 철원역을 설치하였다. 또한, 중간 기착지인 철원군 지역을 식량 생산기지로 조성하기 위하여 1923년 평강군에 봉래호 저수지를 축조한 후 이주 정책을 전개하였다. 1923년 철원평야가 개척되고, 1924년 전국적으로 소작농 1,500호가 철원에 집단적으로 이주하면서 본격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강원도 철원군은 철원평야로 인하여 높은 농업생산력을 보유하였고,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 서울이라는 대규모 소비시장과 인접한 지역으로 물자 교류가 원활하여 지리적 경쟁력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경원선 철도가 지나갔던 철원역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역장을 포함하여 약 8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규모의 역이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현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치되어 왔던 경원선은 2015년 8월 5일 경원선 복원 공사로 인하여 재착공되어 2017년 11월에 개통되었다.

강원도 철원군의 번성함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은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이다.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409번지 외 2필지에 있는 강원도 내 최초 상수도 시설이다. 수도국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구 철원 시가지 주민들의 상수 공급을 위하여 설치한 저수탱크와 관리소 건물이었다. 1937년 발행된 『철원읍지』에서 500가구, 2,500명이 급수 인구로 집계되었으며, 1일 급수 가능량이 1,500㎥[CBM, Cubic Meter]로 기록되어 있다.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의 북진으로 북한 공산당이 반공투사들을 수도국으로 이송하여 총살 혹은 지하 6m 저수탱크에 생매장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철원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은 2005년 4월 15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되었다.

[철원군의 번성과 이를 증명하는 근대 문화유산들]

1921년에 착공한 금강산 전기철도는 1924년에 개통되었다. 관광 목적으로 개통된 것이 특징이며, 금강산 일대에 입지한 유역변경식 발전소를 기반으로 설치되었던 한반도 유일의 전기 철도 노선이었다. 매일 8회 운행하였고, 1936년 연간 관광객이 15만 4000여 명에 달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서울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관광객은 철원역에서 금강산 전기철도로 환승하였다. 또한, 당시의 강원도 창도군에는 황화철광이 입지하고 있었다. 강원도 창도군에서 채광된 황화철광을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구역의 공장으로 운송하기도 하였다.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교차되는 철원군 지역은 더욱 성장하게 되었고 1926년에는 강원도청의 철원군 이전 운동이 추진될 정도로 강원도 내에서는 번성한 도시로 거듭났다. 1935년 인구가 9만 1427명에 이르게 되면서 강원도 내에서 강릉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당시의 철원군의 위상을 보여 주는 근대 문화유산이 다수 남아 있다.

『스토리텔링, 철원』[김영규, 2011]에 따르면, 현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의 마을회관이 있는 관가거리에서 시작하여 동주금융조합-철원제일감리교회-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경성지방법원 철원지청-철원 노동당사-철원경찰서-강원도립병원-철원군청-철원공립보통학교-철원제사공장-철원 농산물검사소-철원 얼음창고-구 철원 제2금융조합 건물 터-철원역이 옛 철원읍 시가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산이다. 대표적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구 철원 제2금융조합 건물 터, 철원 농산물검사소, 철원 노동당사, 철원 승일교 등을 꼽을 수 있다.

1936년에는 옛 철원 시가지에 식산은행 철원지점을 포함하여, 동주금융조합, 철원금융조합, 철원제2금융조합 등 4개의 금융기관이 있었다. 이를 통하여 당시 철원군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4곳 중 구 철원 제2금융조합 건물 터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596번지 외 1필지에 위치한 곳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 철원 제2금융조합 건물 터는 1936년 이전에 지어진 은행 건물이었으나, 6·25전쟁 당시에 훼손되어 철근콘크리트로 조성된 금고의 일부만 남아 있다.

또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많았음을 증명하는 등록문화재인 ‘철원 농산물검사소’가 있다. 1936년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라는 이름으로 지상 2층, 대지면적 298㎡, 건축면적 67.62㎡, 연면적 135㎡, 건물 높이 9.5m 규모의 건물이 건립되었다.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는 일제 강점기에 철원군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검사하던 곳으로, 당시 현물세라는 이름으로 벼의 낟알까지 헤아려 수탈하였을 정도로 엄격하게 농산물을 검사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광복 후, 철원군 지역이 북한령이었던 시기에는 검찰분소로 활용되었는데, 주로 검찰이 반공인사를 색출하고 취조하는 곳이었다. 철원 농산물검사소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위치하며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1937년 『철원읍지』에 따르면, 당시 가구 수 4,269개, 인구수 1만 9693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었으며 유치원과 중고등학교 교육기관 5곳[학생 1,700여 명], 금융기관 4곳, 철원군청 포함 일반 행정기관 34개 기관이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원 지역과 외부 지역은 철도로 이어졌는데, 당시 경원선을 통하여 강원도 철원군에서 서울특별시까지 101㎞[2시간], 강원도 원산시까지 125㎞[3시간], 내금강까지 116.6㎞[4시간]로 연결되어 있었다. 서울특별시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관광객은 철원역에서 금강산 전기철도로 환승할 수 있었고, 철원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포함한 농산물은 경원선을 통하여 강원도 원산시로 반출되었다.

[남북 분단과 철원 지역의 변화]

1945년 8월 15일에 맞은 광복 이후, 한반도는 38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고 남과 북을 이어주던 경원선 운행이 중단되고 통행로가 차단되면서 철원 지역과 서울과의 물자 교역이 중단되었다. 또한,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하였던 (북)강원도청이 강원도 원산시로 이전하게 되면서 철원군은 남한 공산화를 위한 전초기지화되었다. 옛 철원 일원에 있는 ‘철원 노동당사’가 이를 증명한다. 철원 노동당사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3-2번지 외 4필지에 위치한 유적으로,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곳이다.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 초 북한이 점령하고 있을 당시 지상 3층, 13.3m 높이로 지어졌으며, 옛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로 쓰여진 건물이다. 철원 노동당사 신축 당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1개 리(里)마다 쌀 200가마씩을 성금으로 거두며 강제 모금과 노동력 동원이 이루어졌다. 1947년 초부터 철원 노동당사에서는 강원도 철원군과 김화군, 평강군, 경기도 포천시와 연천군 지역 주민들의 동향 사찰을 하고, 반공 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문이나 학살이 이루어졌다. 이는 철원 노동당사 뒤편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 실탄, 철사줄 등이 발견되면서 증명되었다. 철원 노동당사는 수복 지구의 상징적인 근대 문화유산이다. 최근에는 철원 노동당사에서 통일기원예술제, 열린음악회 등 평화 기원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강원도 철원군에는 남북 분단의 역사를 보여 주는 유적도 있다. 그것은 한탄강 중류에 위치한 ‘철원 승일교’로, 큰 아치 위의 상판을 받쳐 주는 하단의 작은 아치의 모습이 통일되지 않고 다르게 건립되었다. 이는 6·25전쟁으로 인하여 시간 차이를 두고 조성된 남북 합작 다리이기 때문이다. 1948년 8월 군사 목적의 연결로로 사용하기 위하여 북한 정권이 한탄교라는 이름으로 교량 설치 공사를 시작하였다. 강원도 철원군과 김화군 지역 주민들이 5일간 교대하여 근무하는 ‘노력공작대’로 총동원되면서 6·25전쟁 초반까지 교량의 북쪽 부분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남쪽 부분은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이후, 이 지역이 수복되면서 1958년 12월 국군에 의하여 공사가 완료되면서 승일교로 개통되었다. 다리가 지어진 역사적 배경에 기반하여 이승만의 승(承), 김일성의 일(日)을 각각 차용하여 승일교(承日橋)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6·25전쟁 당시 큰 공을 세운 박승일 연대장을 기리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철원 승일교는 1999년 한탄대교가 건립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다리가 되었고, 역사적 의미를 지닌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6·25전쟁의 격전지 철원, 사라진 마을이 되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주민의 80%가 북측으로 피난하고 전쟁으로 인하여 중심 시가지가 파괴되면서 번성하였던 강원도 철원군의 중심 시가지들은 사라진 마을이 되었다. 1950년 겨울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후퇴를 거듭하던 미군들은 철원에 남아 있는 주민들을 대피시킨 후, 적군이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시설을 모두 파괴하고자 시가지에 불을 놓았다. 미군의 ‘초토화 작전’을 위한 인위적인 화재가 발생하여 번성하였던 과거의 철원은 전부 사라졌다. 이후에도 강원도 철원군 지역은 6·25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핵심지로, 지리적 중요성이 매우 큰 강원도 평강군·철원군·김화군을 잇는 삼각축인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에 속하였다. 그만큼 전쟁 내내 치열한 쟁탈전이 지속되었고 강원도 철원군 지역은 초토화되었다. 1910년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지어졌던 공공건물들은 6·25전쟁으로 인하여 대부분 파괴되었고 현재는 건물 터만 일부 남게 되었다. 철원 노동당사의 경우, 6·25전쟁으로 인하여 건물 외벽에 총탄 자국이 다수 남아 있으며, 입구 계단에는 탱크 캐터필러 자국이 선명하다. 이는 북진하는 미군들이 당사 건물을 파괴하고자 탱크로 밀어붙이고 포를 발사하면서 생겨난 흔적이다. 또한 건물 외벽에 총탄 자국이 많은 이유는 야간에 이동하는 아군과 적군들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공포심을 느껴 건물을 향하여 마구 총을 난사하였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6·25전쟁은 근대 문화유산만 파괴한 것은 아니다. 철원 지역 주민들의 터전과 생활을 모두 앗아갔다. 1953년 6·25전쟁이 중단되었으나, 철원 지역 주민들은 자기가 살았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강원도 철원군 지역은 남과 북이 맞닿은 접경지역이 되었고, 휴전선과 비무장지대, 민간인통제선이 설정되면서 군인만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원군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하였다. 터전을 잃은 철원군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역에 뿌리를 내려 정착하여야만 하였고, 이들의 생활 기반을 갖추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신철원 지역에 새로운 철원군청이 들어섰고, 고향과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을 위하여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4리, 동송읍 이평2리, 서면 와수1리 일대에 구호 주택이 공급되었다. 1955년에서 1956년경에는 강원도 철원군 지역 내에 초등학교가 세워지면서 재개교하였다. 또한, 1968년 남북관계가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민북 지대를 중심으로 18여 개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갈말읍·철원읍에 정착촌이 조성되었고 정착촌에 입주하는 세대는 원래의 지역 주민 50%와 제대 장병 50%로 이루어졌다.

[사라진 마을 철원의 복원을 위한 시도들]

최근 강원도 철원군의 남아 있는 역사적 상징이 담긴 근대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나아가 사라진 마을 철원군의 콘텐츠 복원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구 철원 시가지의 흔적을 복원하는 방안의 일환으로 2009년 철원근대문화유적센터를 조성하였다. 본 사업은 2009년도 국고 보조 사업인 ‘김화 안보 관광 사업’으로 추진되었고, 16억 원[국비 8억 원, 도비 2억 4000만 원, 군비 5억 6000만 원]이 투입되었다. 철원근대문화유적센터는 강원도 철원군의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근대 문화유산을 연계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조성되었다. 또한, 2015년 8월 5일에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50-11번지에 위치한 백마고지역에서 남북 분단으로 단절된 경원선 철도 복원을 착수하는 기공식이 열렸다. 약 70년간 단절되어 운행이 중단되었던 경원선이 이어지는 시작을 알렸다. 경원선이 복원되면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철도[TSR]를 연결하는 노선이 되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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